중국조선족의 아이덴티티의 多樣化와 커뮤니티의 諸相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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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961회 작성일 2008-11-1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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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의 아이덴티티의 多樣化와 커뮤니티의 諸相과의 관계 --북경시 조선족을 사례로-- 최 해 선 일본 칸세이가쿠인대학 박사후기과정 본 연구는 중국의 산업화, 도시화, 근대화, 글로벌화가 초래한 대량의 인구유동과 거기에 따른 변용하는 조선족사회의 커뮤니티, 즉 도시진출, 해외진출로 인한 조선족사회의 기존의 농촌커뮤니티의 해체로부터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춰 다양하게 존재하는 아이덴티티의 형태를 분석하는 동시에 상호작용에 관한 고찰이다. 상술한 어프로치에 근거하여 주로 인터뷰와 참여관찰에 의거하여 북경시 왕징 지역을 중심으로 연구조사를 진행하였다. 30년간의 격변기를 경험하면서 조선족의 생활형태, 사고방식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 변화 속에서 형성되는 아이덴티티도 각양각색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도대체 조선족 사회는 지금 어떠한 문제점들에 봉착했으며, 이에 따라 어떠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으며 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하고, 이러한 노력들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밝히려고 하는 것이 본 연구의 중점이다. 우선 먼저 조선족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민감하고 시급한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정체성 문제는 어떤 문제인가? 1. 아이덴티티 문제 아이덴티티는 주변 환경에 의하여 수시로 변화하며 유동적이고 또한 취약하다. 늘 갱신되며 새롭게 형성된다. 그러나 아이덴티티는 변화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계승되기도 하며 생활가운데서 자연적으로 몸에 배게 되는 운명적인 고정된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아이덴티티와 불 가변적인 아이덴티티는 늘 평행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며 어떠한 일이나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교차되거나 결합되기도 한다. 아이덴티티는 개개인에 의하여 다양한 형식을 보이기도 하고 또한 자유로이 취사하지만, 내셔널아이덴티티의 경우는 권력과 강제, 강요가 동반되며 배타적이다. 근대사회가 형성되면서 국가와 민족의 형성은 사람들에게 내셔널 아이덴티티, 혹은 에스닉 아이덴티티를 요구하게 된다. 즉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이전까지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이덴티티는 표면에 표현하는 것도, 항상 확인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서부터 사람들에게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덴티티를 둘러싸고 개개인이 소속되어 있는 국가, 민족이 일치 되었을 경우, 통합적인 아이덴티티를 쉽게 형성하게 한다. 하지만 소수 집단의 경우, 국가와 민족이 불일치 할 경우, 다수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경우 사람들은 아이덴티티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는 소수민족평등 정책아래 통합된 “애국심”을 여러 소수민족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의 경우, 그 이주역사는 조선반도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초기는 조선반도의 자연재해에 의하여 단순한 농경이주가 발단이 되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제국주의의 강제이주, 조선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독립운동, 민족해방운동 등을 위주로 한 활동을 중국에서 활발히 전개했다. 즉 이러한 역사적 배경아래 초기에 중국에 이주해 온 사람들은 보다 명확한 “조선인”이라는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었다. 그 후 중국의 국민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합법적인 중국국민으로 된 후, 중국은 중국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과 건국초기 중국의 정치투쟁과 혼란스러웠던 사회 환경은 조선족들로 하여금 점차 중국에 대한 애국심을 받아들이게 하였고 애국심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선족의 보다 복잡한 아이덴티티 혼란을 겪게 된 것은 10년간의 문화대혁명 이후 채택된 개혁개방정책의 실시로부터였다. 특히 90년대에 들어선 후 동서냉전이 종결되고 구소련이 붕괴된 후 , 92년에 수립된 중한국교정상화가 조선족으로 하여금 아이덴티티 혼란을 정면으로 경험하게 했다. 이것은 50여 년간 두절되었던 모국의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하였으며, 모국의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가 보다 많아짐을 의미하며, 커뮤니케이션이 빈번해짐에 따라 모국과의 연대성을 일상생활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였고 한국문화가 조선족들의 생활 속에 점차 침투되며 불가결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모국에서 채택한 재외동포정책은 어디까지나 자국민에게 유리한 것을 목적과 전재로 하였고, 한반도에 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재외동포를 하나의 자원으로 이용, 동원하고 있다. 나아가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재외동포들에게 통일된 에스닉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도록 추진, 강요하기 시작했다.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의 하나가 준거집단의 존재이다. 하나의 소수적인 집단이 국가, 정부 혹은 민족단체 등 소위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실체인 준거집단에 귀속되지 않을 경우, 혹은 귀속되어 있는 준거집단의 슬로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어느 집단에도 소속될 수 없는 존재로 된다. 또 두 집단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지만 어느 한 일방으로부터 완전소속을 강요할 경우, 다른 또 하나의 집단으로 부터 배척당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두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하여 역시 어느 집단에도 소속할 수 없는 존재로 되고 만다. 중국조선족은 국민국가 레벨에서는 이러한 곤궁한 처지에 놓여있으며, 집단내부에서는 자민족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에 처해져 있다. 이러한 운명적인 집단의 경우로부터 발생하는 아이덴티티의 혼란이 사람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며, 인구유동의 과정에서 준거집단 즉 커뮤니티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2. 커뮤니티의 분산, 확장 및 통합 중국의 개혁개방이래, 전국의 인민들은 자유 시장경제에 의한 국내 인구유동과 해외돈벌이의 조류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게 된다. 특히 56개의 소수민족 가운데서 인구유동이 제일 심한 민족은 조선족이다. 200만 인구를 갖고 있는 조선족은 최근에 전 인구의 3분의 1이 이 인구유동에 참가하고 있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인구유동이 심한 북경의 경우를 놓고 봐도 80년대 초기에는 북경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겨우 4000명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북경의 조선족은 정확히 통계 낼 수는 없지만 대략15만 명을 웃돈다고 한다. 거친 인구유동의 물결은 조선족사회의 커뮤니티의 변용과 사람들의 아이덴티티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우선 먼저 중국조선족의 커뮤니티의 형성과정을 보면 150년 전의 이주역사로부터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초기에 시작된 이주는 주로 농경이주였고 맨손으로 동북지역의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했다. 벼농사를 위주로 하는 수전개간은 많은 조선인들로 하여금 자연적으로 물곬이 있는 곳에 정착하게 하였고 나아가서 조선인 촌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해외동포들과 비교했을 때, 중국조선족은 우리 말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조선말을 사용하고 있는 비율이 전 조선족인구의 80%나 차지한다고 한다. 즉 조선족들이 민족적 특색을 비교적 잘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말엽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줄곧 이어지는 민족교육의 영향만큼 크게 작용했던 것은 ‘조선족마을’이라는 조선족커뮤니티의 역할이기도 하다. 조선족마을의 특징을 놓고 보면, 마을구성원들이 모두 조선족인 경우가 많으며 타민족과 혼합하여 생활하는 케이스가 드문, 비교적 폐쇄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환경은 조선족들로 하여금 민족의 전통이나 우리말을 완벽하게 보전할 수 있게 했으며, 뚜렷한 민족적 특성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20년래에 시장경제의 충격과 세계의 신속한 글로벌화는 이러한 여러 가지 기능을 발휘했던 폐쇄적인 커뮤니티의 해체를 가속화하였고 무엇보다도 서로의 연대성과 동질성을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공간을 붕괴시켰으며, 많은 조선족들로 하여금 기존의 집거생활 형태로부터 한차례의 분산을 경험하게 하였다. 그러나 커뮤니티의 해체는 곧 바로 새로운 커뮤니티의 재구성을 초래하고 있다. 즉 도시 속으로 이동한 조선족들은 상부상조하면서 자연적으로 조선족들이 많은 곳에 모여들게 되고 심지어 타운까지 형성하게 되었다. 이미 알려진바 북경의 왕징이나 청도는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살기로 유명하다. 이런 현상은 중국의 대도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외국에서까지 형성되고 있다. 즉 한국 서울의 구로, 대림 등 지역에는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본 동경의 오오쿠보 지역에도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 살며, 조선족음식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세워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큰 분산을 경험하고 그 분산으로 인하여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형식으로 다시 통합을 이루는 것으로 된다. 그 외에도 조선족사회는 인터넷이란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버츄얼 커뮤니티(가상 공동체)를 통하여 서로의 연대성을 넓혀가며 나아가서 민족문화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최근 몇 년 사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미 조선족사회는 여러 개의 큰 조선족사이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런 사이트를 이용한 대도시에서의 모임, 해외에서의 모임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조선족 최대의 인터넷커뮤니티인 모이자사이트에서는 전문 모임게시판도 설치하고 있다. 이러한 모임은 폐쇄적인 공간에서만 생활해 오고, 혹은 지역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던 지난날 보다 지리적 공간을 초월해서 한자리에 모이게 하였으며 서로의 교류와 이해를 촉진하였다. 또한 인터넷을 통하여 중국조선족의 현황을 신속히 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국에 대한 소식도 신속히 접할 수 있으며 빈번한 정보교류 속에서 민족의 유산, 기억들을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현존의 커뮤니티들은 비교적 다양하고 다문화적이며 많은 융합 속에서 존재한다. 즉 우리의 것만 고집하던 것으로 부터 세계발전추세에 발 맞춰서 다문화공존의 시대로 들어서는 것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된다. 이렇듯 중국조선족사회는 기존의 가족, 민족학교, 촌락 등 커뮤니티들이 해체되고 주변도시나 대도시, 인터넷을 통한 버츄얼 공간 등 새로운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커뮤니티들이 형성되고 있다. 커뮤니티의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새롭게 재구성 되는 과정은 조선족들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시킨 것으로 된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해체, 재구과정은 조선족의 커뮤니티가 기존 형태의 연장, 확장으로 되며 새로운 공간에서 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롭게 형성되는 커뮤니티는 아직 불안정하고 소규모적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에 대해서 종래의 커뮤니티의 연장선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과거의 농촌커뮤니티에서 갖게 된 기억이나 경험을 현재의 전혀 다른 생활공간 속에서도 재현하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 어떠한 형식으로 기존의 커뮤니티가 현존의 커뮤니티로 확장되고 연장되었는지를 아래 북경에서 형성되는 여러 가지 커뮤니티의 형태로부터 분석해 본다. 3. 북경의 다양한 커뮤니티 3-1. 소수민족정책과 다양한 조선족 커뮤니티 북경에서는 퇴역군인, 단일민족, 지방회관 등을 중심으로 된 집회가 금지되어 있다. 이것은 어느 조례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은 무형으로 존재하며 늘 감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아래 북경시 내에서 단일 소수민족의 이름으로 집회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조선족들만의 모임이나 활동, 이벤트를 조직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때로는 허락을 받지 못해서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 정부의 주최 하에 공식적으로 열리는 조선족 모임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설맞이 모임이고 하나는 운동회이다. 설맞이 모임은 해마다 열리지만 운동회 같은 경우는 해마다 개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경의 조선족들은 연대성을 유지하는 커뮤니티의 패턴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로부터 볼 수 있다. 하나는 가족, 친지, 동향인, 동창생 등 지난 생활의 연장선을 이용한 모임이다. 이러한 활동 라인은 비교적 폐쇄적이며 종래의 활동범위, 인맥범위를 초월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평면위에 그쳐진다. 다른 하나는 북경에서 생활하면서 개개인의 생활, 활동, 수요, 일 등에 의한 커뮤니티 형성과정이다. 이는 우발적이고 단편적이며, 그 활동 라인은 입체적으로 뻗어나간다. 예를 들어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KSC, 경제인들의 골프모임, 연변대학 동문회, <애심>여성네트워크, 조선족 교회, HBT문화회관, <호우>축구팀 등 민족의 이름을 내걸지 않은 소규모의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형성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모임을 통하여 보다 빨리 북경사회에 적응하고 이를 통하여 정보교류, 인맥관리 등의 자원을 창출하려고 한다. 그리고 민족사회가 지금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하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장소도 마련하기도 하며 동화에 대한 불안감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민족문화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대책을 모색, 주목하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북경에서 일등시민이 되는 즉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가능성도 시도되고 있다. 3-2 포지션의 분화와 아이덴티티형성 대도시속에서 생활하는 가운데는 비록 같은 경로로 상경했지만 개개인이 놓여있는 상황과 환경, 능력에 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갖게 된다. 아래 3가지 종류의 포지션에 대해서 분석 설명해본다. 지식인층에서는 주로 대학교수, 연구원, 학생들을 중심으로 코리언 네트워크와 민족교육의 부흥에 관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족의 내부문제 즉 인구감소, 민족학교 붕괴, 인재유실, 동화 등 문제에 착안하여 적극적으로 해결방책에 대하여 모색하고 연구하고 있으며 국내외의 모든 기회와 자원을 이용한 네트워크를 통하여 조선족사회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것은 중국의 소수민족정책, 한국의 재외동포정책 등을 잘 이용하여 조선족들이 보다 많은 기회를 갖고 보다 많은 외부와의 연대성을 통하여 조선족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한다. 이 외에도 도시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모색이다. 이에 중앙민족대학의 황유복교수를 중심으로 한 실험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북경시내의 한족학교의 교사와 커리큘럼을 빌려서 조선족 클래스를 만드는 것이다. 즉 한족학생들보다 3배 이상의 학비를 지불하는 것으로 오전에는 한족 어린이들과 똑같은 수업을 받는다. 전인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족학생들은 오후에는 하교하여 집에 돌아가지만 조선족 어린이들은 방과 후에도 조선족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민족의 언어를 습득하는 한편 숙제지도, 과외활동 등 다양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조선족학생들로 하여금 한족학교 내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얻게 함으로써 많은 도시 학부모들에게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설득력을 주고 있다. 현재 북경에서는 이러한 실험단계의 학교가 두개 있다. 이는 아직 초기의 실험단계로서 대도시에서 민족교육의 가능성과 대책의 실험이기도 하다. 이러한 지식층에서는 민족의 운명에 관하여 상당한 고민을 함과 동시에 글로벌사회에서 명확한 존재감을 확립하려고 한다. 비교적 생활이 안정된 경제인 부류에서는 취미를 위주로 한 여러 가지 여가활동들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북경시내에서는 20여개의 축구팀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매 주말마다 시합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모임은 비교적 고가의 회비와 경비를 필요로 한다. 역사가 가장 긴 <호우>축구팀의 경우, 매월마다 200원의 회비를 납부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임의 구성원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30대, 40대가 주축을 이루며 현역으로 경기시합에 참가하는 성원들은 20대들이 많다. 그 속에서는 학생들도 존재하며 학생들은 회비며 여러 가지 경비들을 면제받고 있다. 팀의 주축을 이루는 3,40대들은 젊은 멤버에 대하여 팀워크며 민족전통습관, 예의 등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이름은 내걸지 않았지만 확실한 조선족 특색을 가진 축구팀이라는 것을 늘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은 조선족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강렬하지 않고 그것을 문제로 삼지 않으며 현재 기득하고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도에서 지식층들에 대하여 원조를 하기도 하고 또 젊은 층들을 이끌기도 한다. 젊은 층들로 구성된 아직 적응단계에 처해있는 이 부류의 사람들은 민족에 대한 의식은 갖고 있지만, 아직 북경이라는 대도시에 적응하고 있는 단계여서 조선족의 다양한 모임이나 활동에 참가할 여유도 적극성도 결여되어 있다. 그들의 의식 속에서는 우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나서 민족이라든지 아이덴티티문제를 재고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민족문제에 대한 의식은 있지만 개인의 발전과 충돌되지 않게 컨트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북경의 조선족들로 하여금 하나로 통합된 큰 커뮤니티를 결성하는 것을 방해하며 소규모의 다양한 커뮤니티들을 형성하게 촉진하고 있다. 소규모의 커뮤니티는 아직 불안정하지만 조선족들이 북경에서 조선족사회의 형성에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족들은 대도시속에서 매일의 생활을 통하여 동질성을 확인하며 경우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아이덴티티를 선택하며 연출하고 있다. 즉 중국사회에 융합되면서 민족문화를 유지하고, 더욱이 이질화를 반복하면서 보다 다양한 아이덴티티를 획득하며 그것이 또 작은 소그룹의 커뮤니티의 성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4. 결론 상술한 것처럼 조선족은 현재 주변 환경의 변화, 중국형세, 나아가서 글로벌화를 맞이하면서 아이덴티티의 선택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현시점에서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커뮤니티가 외형적으로는 변화하였지만 실제로는 해체되는 커뮤니티의 연장과 확산이기도 하다. 즉 과거의 커뮤니티 속에서 익숙해진 사고방법, 생활습관, 연대성 문화 등을 유지하며, 시, 공간을 초월하여 새로운 환경 즉 도시에서 새로운 형태로 형성하는 동시에 도회지의 생활을 통하여 이러한 요소들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족의 불변한 혹은 태어나서부터 갖고 있는 고유한 것의 연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장은 인간관계, 주변 환경, 국책 등에 의하여 다양한 존재방식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고유한 것을 주축으로 다시 “조선족사회”를 통합시키며 가변적인 아이덴티티에 의하여 여러 가지 형식과 모양의 소규모적인 조선족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태어나서부터 갖게 되는 소위 고유한 불변의 아이덴티티와 내셔널 아이덴티티가 추구하고 있는 현황 속에서 늘 변화하는 가변적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병행하고 충돌하며 교차하는지, 이러한 것을 더욱더 복잡하게 하는 요소와 요지부동의 요소는 어떻게 밸런스를 취하는지 따라서 어떠한 문화실천으로 표현되는지, 어떠한 아이덴티티를 획득하고 편성하는지에 대해서 앞으로도 조선족사회의 변용과 중국사회, 국제사회의 상황, 역사를 접착하면서 조사와 연구를 계속하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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