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도시 조선족사립학교에 대한 고찰

페이지 정보

조회 3,141회 작성일 2008-11-19 19:29

본문

연해도시 조선족사립학교에 대한 고찰 박 룡 옥 남개대학 교수 I. 문제제기 Ⅱ. 연해 도시에서의 조선족교육 모색 1. 장백, 새별학교가 걸어 온 길 2. 민족대학 부속소학교의 삼강학원 3. 청도에서의 소학교, 유치원교육 Ⅲ. 연해 도시 조선족교육의 특점 1. 한족학교 부설 기숙학원 모식 2. 교재, 교수용어의 조한 병용 기숙학교 모식 Ⅳ. 금후의 과제 1. 생존능력각도에서 본 민족어 교육의 필요성 2. 공립학교 설립의 가능성 Ⅴ. 맺음말 I. 문제제기 의무교육단계에 속하는 6~14세사이의 학생들은 장차 중국 조선족의 내일을 떠메고 나아가야 할애들이다. 그런데 2000년의 제5차 인구조사 에서는 23만8858 명 으로 조선족 총인구의 12.4%를 점하던 이 학생수가 2006년에는 11만4502명으로 6년 사이에 반수 이상(12,4356)이나 줄었다. 병이나 사고로 인해 약간 줄었을 가능성은 피면하기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출생률의 감소로 조선족인구가 줄어 그 비율이 높아 졌을 것을 감안하여 10만이 줄었다고 추정할 경우 학생이 약6.28%가 된다. 만일 지금 조선족인구 100명에 7명의 의무교육단계 학생이 있다고 가설할 경우에는 28만 8100명이 줄어 조선족인구를 163만 5742명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6명 남짓한 것으로 보는 것이 비교적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의무교육단계의 이 귀한 애들이 우리말과 글을 구사할 줄 아는가 모르는가는 중국 조선족사회의 장래 운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완전한 수자이기는 하지만 동북을 떠나 연해성시로 이동한 조선족인구가 약 55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 오늘 3만을 헤아리는 그들의 의무교육단계 자녀들에 대한 우리 말 교육문제가 절박한 과제로 나서고 있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주로 지금까지 북경, 천진, 청도에서 자기 나름대로 전개되어온 조선족사립학교들의 민족교육정황을 살펴 본 기초에서 그 특징을 간단히 분석한 후 앞으로의 노력방안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Ⅱ. 연해도시에서의 조선족교육 모색 1. 장백, 새별학교가 걸어 온 북경시 장백(长白)학교는 1994년 8월, 김정국교장에 의해 설립되었다. 설립초기 학생은 1학년 10명, 학전(유치원)반 2명으로 도합 12명이었다. 교실은 임대해 썼으며 운동장도 없고 교수설비도 낙후하였다. 그러나 교원들이 추호의 동요도 없이 일심협력하여 학교가 일정한 규모를 갖추게 되자 학생이 점차 불어 1997년에는 학생 230명에 교원 18명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임대료가 비싸 1998년 여름 시교에 있는 통주구로 옮기면서 학생이 줄기 시작했다. 2001년 4월, 필자가 장백학교에 찾아 가 교무주임한테서 알아본데 의하면 그 당시 학생은 170여명이었고 학전(유치원)반부터 초중 2학년 까지 9개 교실에 기숙사, 식당이 다 갖춰져 있었다. 원래 있던 공장건물을 막아 교실 및 기숙사로 쓰고 있었는데 한해의 임대료는 40만원이라고 했다. 연간 학교에 바치는 비용은 초급중학생 8천원, 소학교 고급학년 7천원, 저급학년 6천원이었다. 이것으로 1년에 40만의 임대료를 내는 외에 전교 사생의 주식과 교원들의 월급 및 교수 설비들도 마련해야 했는데 그 때 20여대의 컴퓨터를 갖고 있었다. 최근 요해한데 의하면 그 후 장백학교는 조건이 훨씬 좋은 곳으로 교사를 옮겼다가 다시 통주구로 되돌아오는 과정에 학생이 대폭 줄어 경영위기 에 직면했다고 한다. 천진시 새별(新星)조선족소학교는 김정국교장이 장백학교보다 1년 먼저 세운 사립학교로서 학전(유치원)반부터 3학년까지 설치하고 4학년부터는 장백학교에 다니도록 했었다. 1997년9월에는 개교 4년 만에 1600평방되는 새 학교에 들었고 1999년부터는 4학년을 설치하여 2004년까지 3기의 졸업생도 나왔다. 학생수가 130명으로 늘어나 한창 궤도에 오를 무렵, 학교 건축할 때 진 빚 때문에 새 학교에 입주한지 7년 반 만에 궁지에 빠졌다고 한다. 2. 민족대학 부속소학교의 삼강학원 삼강학원(三江培训学校)은 북경시의 몇 명의 지성인들에 의해 발기된 것이다. 중앙민족대학 부속소학교와 협의를 거쳐 이사회 형식 으로1999년9월1일에 43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첫 걸음마를 떼게 되였다. 당시 이 학교에 다니는 한족학생의 학비가 약 3백 위안 정도였는데 조선족학생의 경우에는 그 3배에 해당하는 1000원을 의탁수업비(借读费)로 학교에 바치고 부속소학교의 각 반급에 배치되어 한족학생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조선족학생들은 산재해 있어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는 방과 후에 학생들에게 우리말과 글, 또는 노래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적당히 과외의 보도도 조직하고 숙제하는 것과 생활을 통일적으로 관리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지어 주었다. 처음에는 비용을 1인당 한 학기 3500원씩 연간 7천원을 받았는데 학생이 점차 불어 많을 때는 조선족학생이150여명이 되었다. 그런데 2005년 7월 중앙민족대학 부속소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120명의 조선족학생들을 거느리고 해전구 실험소학교로 옮겨 갔는데 지금은 60여명의 조선족학생이 재적하고 있다. 학생이 감소되는 주요원인은 2만원의 입학찬조금(贊助金)을 내야한다는 실험소학교의 규정이 있기에 새로 들어오는 조선족학생의 경우에는 그 외에도 1년에 만 2천원을 더 내야 기숙생활을 하면서 조선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2005년 9월부터 3년 사이 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이 해마다 3-4명에 지나지 않아 지금 3학년까지의 학생이 10명 정도인데 내년에 6학년생이 졸업하게 되면 남게 될 조선족학생은 30명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도시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알게 하겠다고 시작한 장한 일이 조선족 학생이 줄어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3. 청도에서의 소학교, 유치원교육 2000년8월, 김장웅 선생님은 유지들의 도움으로 청도의 첫 조선족학교인 리창구(李沧区)조선족소학교를 설립하였다. 1-4학년까지의 12명의 학생으로 첫 시작을 했었다. 교사는 촌에서 학교의 요구대로 지어주었고 해마다 임대료를 내는 형식으로 해결했다. 2005년 9월에는 벽산(碧山)조선족소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는데 지금은 약 280명의 학생(유치원생 80명까지 포함)이 있고 교원은 38명이다. 2006년 8월 벽산소학교에서 나온 김장웅선생님은 새로 서원장(西苑庄)조선족소학교를 세웠다. 교사는 서원장 마을에서 학교의 요구에 따라 2800평방 되게 지었고 임대비는 한해에 25만원인데 지난 10월 8일 새 교사에 이사를 했다. 지금 서원장조선족소학교에는 교원40명에 5학년까지의 학생 90명, 유치원생 250명이 있다. 내년 9월에는 지금 두개 학전(유치원)반에 재적하고 있는 70명 학생이 입학하는 동시에 6학년도 생겨 최소로 160명 소학생을 가진 완전소학교로 될 것이고 유치원생은 계속하여 250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서원장조선족소학교는 주택구(小区)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주택구에서 집을 산 조선족 호수는 5천호가량 되는데 약 10% 가정의 애들만 온다고 해도 학생내원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한다. 모두가 기숙제로서 학생당 한 학기 수금은 2800원이고 유치원생은 매달에 600원이다. 교과서와 교수 용어는 한어와 조선어를 병용하고 있는 외에 전통문화교육의 차원에서 매주 2시간의 체육시간 외에 태권도를 2시간씩 배정하여 전교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2006년 8월에 설립된 서원장조선족소학교는 김장웅 교장이 북경장백학교의 전성기인 1997년부터 3년 반 장백학교에서 교무주임을 맡았던 경험과 리창구소학교 설립자로서의 6년간의 학교경영 및 교수방면의 경험을 총결하고 교훈을 섭취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고찰한 동북과 내몽골 외의 연해도시들에서 전개되고 있는 조선족 사립학교와 학원의 전개 상황을 일람표로 보이면 아래와 같다. 연해도시 조선족사립학교 일람표 2007년 10월 현재 학교명칭설립지점설립년설립자초기전성기현재전이학교전이시간새별소학교천진시동려구1993.8김정국18/8130/18없음대명학교2005.3장백학교북경시조양구1994.8김정국12/4230/1830/6근송2소2003.8삼강학원민대부속소학1999.8황유복등43/6150/1360/13실험소학2005.8리창구소학교청도시리창구2000.8김장웅12/11280/38서원장소학교청도시서원장2006.8김장웅190/25340/40 *초기, 전성기, 현재 란의 > 부호 좌측은 유치원과 소학교학생 수, 우측은 교원과 관리인원 수자이다. *위의 일람표는 여러 학교의 교장과 교무주임들로부터 직접 요해한 내용과 «중국조선족학교지» (동북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 편찬, 1998년,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p861-863)를 참고하여 작성한 것이다. Ⅲ. 연해 도시 조선족교육의 특점 이상의 고찰에서 보면1993년8월 천진시 새별조선족소학교 설립으로 스타트를 뗀 연해도시에서의 조선족 중소학교 교육은 민족교육에 뜻을 둔 지성인들에 의해 북경, 천진, 청도 등 3개 성시에서 자기 나름대로 전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종합하면 주로 두 갈래로 되는 모색의 길을 걸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모식은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한족학교 부설 기숙학원 모식 이것은 한족학교에 부속된 기숙제도 조선족학원으로서 낮에는 한족학생들과 일치하게 정규교육을 받은 후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말과 글, 노래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각과의 보도, 그리고 숙제하는 것과 생활을 통일적으로 관리하는 집단화된 과외교육이다. 이 방법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중앙민족대학 부속소학교에서 시작된 삼강학원과 2003년 8월 경송제2소학에 들어간 북경장백학교, 2005년 초에 대명학교에 들어간 천진새별소학교 등이다. 그 장점: 이 모식은 조선족학생을 각 반에 분산시켜 공부하게 함으로써 한족학생과 같은 수준의 문화지식을 배우게 할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있다. 그리고 방과 후 집체로 되는 과외보도를 통해 학생들은 민족어를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과에서 배운 내용도 공고히 할 수 있다. 이는 자라나는 애들이 민족 언어,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맞벌이하는 젊은이들의 자녀 관리 및 과외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식은 자체의 제한성도 갖고 있다. 단점: 방과 후의 민족어 수업 및 보도와 기숙관리에 중점을 둔 학원 성질의 과외교육이기에 그 자체가 장구성이 없고 소속 한족학교의 정황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 피동적인 처지를 면하기 어렵다. 이는 한족학교에 부설학원을 세워 과외로 민족교육을 한다는 것은 장구지책이 아닌 임시 구급에 지나지 않고 결국에는 자녀에게 민족교육을 시키려는 학부형들의 기대에 만족을 주기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2. 교재, 교수용어의 조한 병용 기숙학교 모식 이것은 전일제 기숙학교로서 어문(한어), 수학, 영어 등 교과는 당지 통용교과서를 쓰고 조선어문, 사상품성, 음악, 미술 등 교과는 민족교과서를 쓰면서 이중 언어교육을 하는 조선족 중소학교교육이다. 이 모식은 북경시 장백학교에서 9년간, 천진시 새별조선족 소학교에서 11년 반 실시했었고 2000년 8월부터 청도시의 리창구조선족소학교에서, 2006년 8월부터는 서원장조선족 소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 장점: 이 모식은 포용성을 띠고 있다. 동북의 조선족학교에 다니다가 부모 따라온 애들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연해도시에서 태어나 한어화 된 애들에게는 자기 말과 글을 알게 하는 배움의 요람으로서 조선족사회의 구심점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교재와 교수용어 뿐만 아니라 과외학습과 생활에서도 조선어와 한어를 병용하기에 기억력이 비상한 소학시절에 쉽게 두개의 언어를 배워 낼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겸해서 꾸리고 있는 기숙사제 유치원은 학생내원을 보장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맞벌이하는 젊은 학부모들이 시름 놓고 자녀를 맡길 수 있는 학교로도 되고 있다. 단점: 학부형의 경제 부담이 중한 것이 제일 큰 단점이다. 전에 동북에 있을 때는 학비만 얼마간 내면 공부시킬 수 있던 것이 지금은 사립학교이기에 학교의 일체 비용을 몽땅 학부모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의무교육단계의 자녀가 있는 학부모들은 그 대부분이 90년대부터 고중(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보람 있는 삶을 개척해 보려고 적수공권으로 연해성시에 나왔던 조선족 청년들이다. 따라서 생활기반이 아직 든든치 못한 그들이 자녀를 민족학교에 보내려면 너무 힘에 부치기에 아예 한족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Ⅳ. 금후의 과제 위의 두 모식은 연해도시에서 자라나고 있는 조선족학생들에게 우리말과 글, 그리고 문화를 알게 하려는 장한 뜻을 지닌 지성인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변화 많은 시기의 첫 모색인 만큼 경영불찰로 인한 교원과 학생들의 유실, 또는 장구성이 결여되고 피동적인 일면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북경과 청도에서 600 (300여명의 유치원생도 포함)여명의 조선족아이들이 부동한 방식으로 민족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0여년 남짓한 사이 지성인들이 쌓아 온 실천은 이 후 연해도시에서의 조선족 교육의 전개에 귀중한 경험과 교훈들을 남겨 주고 있다. 1. 생존능력각도에서 본 민족교육의 필요성 90년대부터 조선족이 다른 민족의 유동인구에 비해 연해성시에 많이 집중된 원인이 문화수준이 더 높거나 기술방면에서 더 숙련해서가 아니라 언어우세에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북에서 민족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또 영어교원 부족으로 많은 조선족중학교들에서 일어를 배워주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런데 지금 북경과 청도의 부동한 사립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우고 있는 소학생이 연해도시의 의무교육단계에 처한 조선족자녀 3만 여명의 100대 1정도(30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심사숙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하나의 언어를 남보다 더 안다는 것은 남보다 눈이 하나 더 있거나 귀를 하나 더 갖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중국의 60여개 대학들에서 한국어를 전공으로 배우는 대학생들이 많이 배양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북의 농촌 마을과 달라 연해도시의 조선족아이들이 한어를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우리가 적당히 조건만 지어준다면 기억력이 좋은 소학시절에 가정환경과의 배합 속에서 남들의 4년 대학공부보다 더 쉽게 자기 말과 글을 배워 낼 수 있게 된다. 이는 경쟁이 갈수록 심해가는 내일의 삶을 위한 투자로 될 뿐만 아니라 외국어가 아닌 자기 민족어이기 때문에 앞으로 민족문화를 진일보 이해하며 2중문화인으로 보다 풍부하게 살아가는데 든든한 지팡이가 된다는 점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2. 의무교육단계 공립학교 설립의 가능성 학교 임대비와 교원의 월급 및 운영경비에 이르기까지 몽땅 학부모가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연해도시의 조선족사립학교를 공립학교로 전환시키는 일은 연해도시의 조선족 자제들을 민족학교로 모이게 할 수 있는 제일 관건적인 돌파구가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북경, 천진, 청도의 조선족 지성인들은 조선족공립학교의 설립을 둘러싸고 여러 방면으로 꾸준한 노력들을. 거듭해왔다. 이는 조선족의 장래 운명과 관계되는 일이기에 반드시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오늘에 와서 달라진 것은 의무교육법의 수정되었다는 점이다. 2006년 6월, 중화인민공화국의무교육법 1986년 4월 12일 제6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4차 회의에서 통과되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의무교육법 이 2006년 6월 29일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22차 회의에서 수정되었다. 이 법은 2006년 9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혀져 있다. 하지만 제61조에 "의무교육을 받아야 할 적령아동, 소년의 잡비를 받지 않는 실시 절차에 대해서는 국무원이 규정한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전국적 범위에서 실시되기까지는 약간한 시간이 수요 될 것으로 보여 진다. 이 20년 만에 수정되어 제2조에 ‘의무교육 실시단계에는 학비와 잡비를 받지 않는다.’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연해도시들에서 학, 잡비를 받지 않는 도시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 눈길을 돌릴 때가 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무교육법 제18조에는 ‘국무원 교육행정부문과 성, 자치구, 직할시 인민정부에서는 수요에 근거하여 경제발달지역에 소수민족 적령 아동들과 소년들을 받아들이는 학교(학급)를 꾸려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소수민족 적령 학생을 받아들이는 학교를 꾸리는 일은 성급 이상 인민정부에서 수요에 따라 정하고 학교가 꾸려질 경우 9년 의무교육을 받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외에 제 12조에서는 적령 아동과 학생들이 호구소재지가 아닌 지역에서 사업하거나 거주하는 부모 혹은 기타 법적보호자를 따라가 공부할 경우 당지의 인민정부에서는 마땅히 그들에게 평등하게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은 성, 자치구, 직할시에서 규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도시유동인구의 자녀들을 적당히 돌보라는 규정으로서 도시호구보다 유동인구가 훨씬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조선족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유리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의무교육법 제17조에는 ‘현급 인민정부에서는 수요에 근거하여 기숙사제 학교를 건설함으로써 분산되어 거주하고 있는 적령아동들과 소년들이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연해도시에 공립조선족학교를 설립할 경우, 조선족의 산재 특성을 고려하여 기숙사제 학교를 세울 수 있는 근거와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후 공립의 조선족중소학교를 세우게 되더라도 지금까지 연해도시 조선족 사립학교교육의 주류였던 교재, 교수용어의 조한 병용 기숙학교라는 모식을 약간의 조정이 불가피하기는 하겠지만 대체적으로는 그대로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 Ⅴ. 맺음말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는 다른 나라들에서 보기 드문 우월한 소수민족정책이 있다. 거기에 새로 수정된 의무교육법은 조선족이 연해도시에 공립학교를 꾸리는데 유력한 법률적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관건은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쟁취하는가에 달렸다. 이민 1세들이 우리가 동북에서 자유롭게 자기 말과 글을 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과 같이 우리 세대들도 연해성시에서 자라나는 애들이 다른 민족과 평등하게 무료로 의무교육을 받으면서 자기 말과 글도 배울 수 있도록 조건을 창조하고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겠다고 본다. 우리 모두의 지혜를 한곳에 모아 방안을 내온 후 힘을 합쳐 행동을 시작하고 노력을 계속하여 될수록 빠른 시일 내에 연해도시에 공립의 의무교육학교를 세우는 일은 우리 세대가 반드시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라고 본다. 참고문헌: 동북조선민족 교육과학연구소 편찬 «중국조선족학교지»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8년, p861-863. 정신철, "조선족 도시민족교육의 출로" 민족단결 1999년 제6기, 34 -35. 国家统计局人口和社会科技统计司 国家民族事务委员会经济发展司 编《2000年人口普查 中国民族人口资料》上册,民族出版社, 2003年, p545。 «중화인민공화국의무교육법» 2006년 수정판. 2006년 9월 1일부터 시행.
Total 513건 1 페이지
发展探究 목록
번호 제목 조회 날짜
513
조회 11574회 작성일 2005-02-14
11574 2005-02-14
512
조회 4953회 작성일 2006-08-19
4953 2006-08-19
511
조회 4130회 작성일 2005-02-24
4130 2005-02-24
510
조회 4114회 작성일 2005-12-18
4114 2005-12-18
509
조회 3650회 작성일 2003-09-06
3650 2003-09-06
508
조회 3640회 작성일 2005-02-11
3640 2005-02-11
507
조회 3613회 작성일 2003-08-25
3613 2003-08-25
506
조회 3571회 작성일 2003-08-29
3571 2003-08-29
505
조회 3266회 작성일 2005-04-06
3266 2005-04-06
504
조회 3218회 작성일 2008-11-19
3218 2008-11-19
503
조회 3171회 작성일 2005-10-14
3171 2005-10-14
열람중
조회 3142회 작성일 2008-11-19
3142 2008-11-19
501
조회 3082회 작성일 2013-03-15
3082 2013-03-15
500
조회 3081회 작성일 2008-11-19
3081 2008-11-19
499
조회 3068회 작성일 2005-07-11
3068 2005-07-11
498
조회 3055회 작성일 2005-11-04
3055 2005-11-04
497
조회 3048회 작성일 2003-09-06
3048 2003-09-06
496
조회 2992회 작성일 2008-11-19
2992 2008-11-19
495
조회 2971회 작성일 2005-12-11
2971 2005-12-11
494
조회 2961회 작성일 2008-11-19
2961 2008-11-19
게시물 검색

카테고리

카테고리
 时事新闻
 敎育新闻
 数据新闻
 人物新闻
 关联新闻
发展探究